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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스 이솝우화

18. 귀뚜라미와 개미

DS2WGV 2005.11.27 03:44
출처 : 로버트 짐러, 김정우 옮김, 파라독스 이솝우화, 정신세계사, 1991.


18. 귀뚜라미와 개미


여름과 가을 동안 양식을 차곡차곡 저축해 두지 않았던 귀뚜라미는 겨울이 닥쳐오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귀뚜라미는 개미의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좀 나누어 달라고 했다.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 개미는 귀뚜라미를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다. "우리처럼 열심히 일을 했으면 지금 이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을 것아냐. 근데 열심히 일하는 우리를 비웃고 말이야, 세월아 네월아, 시끄럽게 깽깽이나 켜댔으니."

"아니, 적선해 주기 싫으면 적선만 안 하면 되지, 왜 남의 음악에 대해서 시끄럽다느니 뭐하다느니 비난하는 거요?" 귀뚜라미가 말했다. "당신한테는 그저 한 번 '찍'하는 정도로 들리는 소리도 사실은 세 개나 되는 음을 내 바이올린으로 켠 절묘한 연주란 말이오. 그 셋잇단음의 하나하나는 50분의 1초만큼의 길이를 갖고 있고 그 사이사이엔 또 그만큼의 짧은 정지가 있소. 그러니까 난 피아노 음역보다 한 옥타브 위로 연주를 하면서도, 총연주시간 10분의 1초 동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연주를 해낸 것이란 말이오."

"그렇게 말을 하니까 무슨 음악의 거장처럼 보이긴 하는데 도대체 음악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밀알과 보리알을 줍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더 낫지." 개미의 대꾸였다.

"난 대단한 일을 해 냈소. 난 내 음악으로 독창적인 과학적 측정체계를 완성했소." 귀뚜라미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현재의 온도를 알고 싶으면, 그저 1분 동안에 내가 연주하는 '찍' 소리의 수를 세어서 4로 나눈 다음, 다시 거기에 40을 더하기만 하면 되지. 자, 봐요. 이게 바로 지금의 화씨 온도 아니겠소!"

"정밀하긴 정밀하군." 개미가 되받았다. "근데 일기예보가 자네한테 밥을 먹여주나, 떡을 먹여주나?"

"그렇다면 당신은 뭐 내세울 거라도 있어?" 귀뚜라미가 거칠게 말했다. "저만 먹겠다고 광에다 먹을 걸 잔뜩 쌓아 놓은 것 외에 뭐가 있어?"

그러자 이번에는 개미가 화를 내며 말했다. "너야말로 오락과 지식만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개인주의자야. 하지만 우린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맞먹는 존재야. 물론 더 우수하다고야 못하지만 말이야. 우린 사람들보다 수가 많아. 그리고 우리의 사회제도는 상당히 복잡해. 역사도 한참 옛날로 거슬로 올라가지. 우리가 땅 밑에서 농장을 일구고 진딧물로 즙을 짜고 있을 때, 인간들은 동굴 속에서 아직 불도 없이 벌벌 떨고 있었어."

"본능적으로 사는 거야 누가 못해!" 귀뚜라미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네 족속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어. 사람과 비교를 하다니.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다구."

"그 점에서도 우린 인간과 동등해. 왜냐하면 자기 종족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대규모 전쟁을 벌여서 자기 천적 전체가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네 종족을 학살하는 인간들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우리 개미뿐이기 때문이야. 보라구, 인간들처럼 우리 개미들은 피부 색깔만 달라도 가차없이 노예로 삼기도 하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서 전쟁과 노예제도 말고 또 더 위대한 창조물이 어디 있겠는가?"

가히 논박할 수 없는 이 주장에 말문이 막힌 귀뚜라미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 가지 못해서 귀뚜라미가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자, 개미들은 귀뚜라미의 시신을 자기 집으로 질질 끌고 가서 아주아주 맛있게 먹었다.

교훈 : 겨울이 왔으니 봄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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